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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충에게 육아 권하는 사회 본문

일상에세이/생활의발견

맘충에게 육아 권하는 사회

hkzeze 2016. 11. 11. 23:31

나는 큰엄마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큰엄마라고 부르는 옆집 아줌마가 있다. 어릴 적 부모님과 찍은 사진보다 큰엄마와 찍은 사진이 더 많은 걸 보면, 대부분 내 유년 시절은 큰엄마와 함께 했음이 틀림없다. 큰아빠라고 부르던 옆집 아줌마의 남편은 해외 출장이 잦아서 집을 자주 비웠다. 그래서 큰엄마는 아들 둘의 양육을 도맡았다. 부모님이 아침에 출근을 하자마자 나와 두 살 터울인 여동생은 그 집으로 쪼르르 달려가 큰엄마에게 밥을 달라고 졸랐다.

 

두 달 전 사촌언니 집에 놀러 갔다가 형부에게 들은 얘기다. 어느 날 야근을 하고 집에 왔는데, 불이 다 꺼진 거실에서 언니가 한 손으로는 네 살짜리 첫째에게 밥을 먹이고 있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신생아인 둘째를 안고 흐느끼고 있더라고. 이와 비슷한 말을 하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육아의 현실에 대해 대충이나마 알게 되었다. 출산과 육아를 도맡고 있는 그들에게는, 큰엄마가 없었다. 어쩌면 옆집에 아줌마가 사는지 궁금 한 것보다 옆집 아줌마가 시끄럽다고 찾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더 앞설지도 모른다

 

이 말이 마치 공동체가 사라졌다든지 삭막해져 가는 현대사회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공동체가 사라지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 무관심해져 가는 사회보다도, 왜 육아의 책임을 여성만 가지고 있는지 그 책임이 왜 결국 다른 여성에게 전가되어야 하는지를 먼저 말하고 싶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심심치 않게 맘충이라는 단어를 볼 수 있다. 모성비하의 신조어라고 한다. 모성과 비하라는 단어가 어떻게 함께 붙어서 쓰일 수 있는지, 맘충의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여러 SNS에 올라오는 글들을 종합해보면 맘충은 엄마라는 뜻의 맘(Mom)에 벌레 충() 자를 붙여서 만든 말인데, 처음에는 자기 아이만 신경 쓰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일부 엄마들을 뜻하는 것으로 쓴 것 같다.

 

맘충이라 불러도 되는 행동 기준 또한 분명하지 않다. 어느 커뮤니티 사이트 에서는 아무데나 아이의 기저귀를 가는 엄마를 맘충이라고 하고 다른 곳에서는 좁은 길에 유모차만 끌고 다녀도 맘충이라 한다. 기준이 모호한 것뿐만 아니라 과연 기준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아무데나 기저귀를 간다고 맘충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기저귀를 특정구역에서만 갈아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 화장실에 아이 기저귀를 편히 갈 수 있는 장치가 얼마나 설치되어 있을까. 고작 백화점, 몇 몇 여자공중화장실에만 설치해놨을 뿐이다. 그것마저 까맣게 때가 껴있거나 덜렁거려 아이가 떨어지는 사고가 나기도 한다.

 

유모차 역시 마찬가지다. 좁은 골목에 유모차가 있어 지나다니기 힘들다는 이유로 맘충이라 불러도 된다면 길거리를 줄지어 다녀야 하는 서울 홍익대학교 입구 지하철 9번 출구 앞에 차를 끌고 나오는 사람들도 자동차충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런 말은 없다. 시집살이가 집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느 부류나 다 있다. 아빠가 식당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를 통제하지 않고 있다면 대디(daddy)이 된다. 밖에서 조카와 밥을 먹다 소리를 지르는 조카를 저지 하지 못하는 삼촌은 엉클(uncle)이 된다. 그러나 대디충, 엉클충 따위 말들은 들어보기 힘들다.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더 많이 나가니, 당연히 맘충이라는 말이 더 자연스러운 것 아니냐고 할 수 있겠다. 이 말 역시 앞서 언급했던 육아 책임이 왜 여성에게만 있는지를 다시 물어 보게끔 만든다.

 

최근에도 종종 큰엄마는 내게 전화를 한다. 항상 레파토리는 똑같다. 마지막 인사는 언제나 남자를 믿지 마라. 쎄가 빠지게 아들 둘 다 키워 놨더만 애 둘 키우는데 무슨 돈을 이렇게 많이 썼냐고 맨날 윽박지르던 느그 큰아빠 봐라. 남자는 믿을게 못 된다 안카나. 큰엄마처럼 살다가 갈라서지 말고 애초에 제대로 된 인간을 만나야 된다잉.

 

반 평생 자기와 자기 남편의 아이에 대한 육아를 도맡아온 사람이 생각하는 현실적인 해방구는 제대로 된 남편, 즉 다른 개인이다. 육아 책임을 여성에게만 전가하지 않는 사회, 육아를 도맡는 사람에 대한 예의, 부모 공동 육아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같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큰엄마의 말에는 눈물이 묻어있다. 언제쯤 큰엄마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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